[사이보그가 되다-독자적 시점(視點)] 김초엽 & 김원영

책리뷰

[사이보그가 되다-독자적 시점(視點)] 김초엽 & 김원영

쌈장에빠진돼지 2021. 12. 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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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은 후부터 김초엽 작가의 작품이 발간되길 기다려왔다. 마침 이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고, 역시나 책 제목부터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이 유발되어 무척 설레었다.
이번 책은 김초엽 작가의 이전 작품과 같은 SF소설은 아니고, 김원영 작가와 함께 '장애'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풀어나가는 글이다.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 김원영


실제 2018년 김원영 작가가 김초엽 작가에게 제안하는 이메일을 보내면서 시작되었고, 책의 마지막에는 둘의 대담을 대화체로 담았었다.

내가 생각하는 '장애'란 신체와 정신적으로 가진 장애와 그로 인한 '결손'은 치료와 재활을 통해 '정상화되어야 하는 것' 또는 '정상에 가까워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선천적인 원인이든 후천적인 원인이든 장애를 '교정(치료)해주어야 하는 결손'이라고 생각하는 개념부터가 틀린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세상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비장애인들의 시선에 맞추어져 있다. 듣지 못하던 아기가 의학기술을 통해 처음 엄마 목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환하게 웃는 표정을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이 엄청난 조회수와 좋아요를 받으며 '감동 영상'으로 기록되었지만, 이 책에선 그것도 일종의 비장애인들의 시선에서 확인되는 감동 포르노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알려준다. 실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처음 소리를 들을 때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고, 공포나 스트레스를 느낄 수도 있고, 꼭 청각장애가 아닌 어떤 장애든 거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사람들은 그 장애가 교정되는 것에서 더 낯섬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장애를 고쳐내며 정상화하여 유발하는 감동이란, 정작 장애인들에게는 어떤지 묻지도 않은 비장애인들의 바람에서 만들어진 허상일 수도 있다.

나도 그동안 저런 영상들을 보며 감동으로만 느꼈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비장애인 시선으로만 살아오고 익숙해져 있었는지를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흔하게 사회적으로 쏟아지는 태도는 '배려해주어야 한다' 이겠지만 사실 암묵적으로 '동정 어린 시선'이 붙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장애 때문에 힘드니깐 도와주어야 하고, 부족한 점이 많으니깐 챙겨주어야 한다는 것, 물론 여기까지는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그 이면에는 '그들은 부족하다'는 비장애인으로부터의 철저한 분리 개념이 깔려있는 셈이다.

요즘은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수업하며, 차별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무엇인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불편하면서 비장애아이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 장애아이들이 얼마나 상처가 될 수 있으며, 우리는 같은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 함께 도와야 하고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 ' 고 가르치고 있고, 학생들은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런 가르침 또한 장애인들의 관점이 아닌 비장애인들의 관점에서의 수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이들은, 특히 청각장애와 같이 그냥 겉으로 볼 때에는 장애인인지 알기 어려운, 어쩌면 숨길 수도 있는 사람들은 '장애를 드러낼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사실은 당연하게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들은 장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배려와 함께 떨어질 사회적 낙인 때문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으로 평가되는 순간부터 사회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그 장애라는 추가된 지위 때문에 취직이 힘들다거나 다른 사소한 것에서부터 차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도 매우 다양해서 세상엔 선택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는 장애가 있다는 것과, 또 장애인들이 심리적으로 어떤 갈등을 겪에 되는지, 이런 내용들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장애를 드러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필요한 도움을 얻는 것)과 낙인을 비교할 수밖에 없고, 많은 경우 장애를 숨기고 비장애인으로 패싱 되는 것을 선택한다.'
'장애(disability)는 단지 몸의 특정한 기능이 결여(dis-ability)된 상태가 아니라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획득한 일종의 신분(지위)에 가깝다.'

이것이 사회적 배경이 장애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장애인들이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장애를 극복하는 따뜻한 기술?"
"우리는 장애를 종식시킬 겁니다."


4차 혁명시대에 과학기술은 무궁무진하다. 하루에도 수십개 수백 개의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너도나도 기술이 발전하면 장애를 종식시킬 수 있고, 장애를 극복할 만큼 따뜻한 기술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점점 기대와 낙관을 불러 모으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현대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기술낙관주의의 홍보대사로 동원된다. 특히 최첨단 기술을 홍보할 때 장애인들에게 정상성을 되돌려주겠다는 주장은 대중의 마음을 뒤흔드는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메세지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MIT 미디어랩의 교수 휴 허는 그 자신이 로봇 다리를 장착한 사이보그다.
휴 허는 과거에 뛰어난 암벽 등반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등반을 하다 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의족을 직접 제작하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이젠 생체공학 기술이 적용된 다리를 몸에 달고 있다. 그리고 휴 허는 인간이 곧 자연과 기계의 경계가 사라진 새로운 몸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비장애인들의 시선에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또,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나올수록 장애인들이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란 것은 의학적 기술과 기술이 발전한다고만 해서 극복되어갈 것이 아니고, 또 반드시 극복되어가야 할 것만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인생이 진정으로 어떤 가인데 아직 그들의 목소리는 세상에 깊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 책을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비장애인 중심화되어 있는 이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에 크게 달려있을 것 같은데, 그 이해란 게 이런 책들을 읽지 않고는 주변에서는 접하지 못한다면 일상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책 속의 글 중 '구체화되지 않은 낙관론은 현실의 고통을 축소해버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계속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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